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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골동양과자점] 표지 이미지 |
특유의 위트와 맛깔스러운 대사, 깔끔한 그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대표작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케이크가게 “엔티크”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다.
단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천재적인 영업술을 갖고 있는 사장 타치바나 케이이치, 마성(魔性)의 게이이자 천재 파티세인 오노 유우스케, 권투 세계챔피언까지 올랐으나 망막박리(網膜剝離)로 결국 권투를 포기하고 오노의 견습생으로 들어온 칸다 에이지, 순수하고 과묵한 미남자지만 무슨 일에든 서툰 코바야카와 치카케, 이 네 명의 남자주인공들이 “엔티크”에서 선사하는 달콤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어른의 맛은 읽는 이의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신선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어릴 때 유괴를 당했던 경험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까지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타치바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평상시에는 강한 척, 어른스러운 척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매우 여린 마음의 소유자로 항상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상대의 애정을 갈구해왔다. 단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데도 케이크가게를 경영하는 타치바나는 자신을 유괴했던 범인이 매일 사다준 케이크의 맛 때문에 단 맛을 싫어하게 됐으며 혹시라도 그 유괴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것이 골동품 가게를 개조한 케이크 전문점 “엔티크”다. 이 타치바나의 아이러니한 트라우마는 큰 줄거리가 없어 보이는 이 만화의 뼈대를 이루는 작가의 안배이자 독자들의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로서 작용하는데 결국 타치바나를 유괴한 범인은 잡지 못하지만 또 다른 유괴 사건을 타치바나의 활약으로 해결하게 되고 타치바나의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또 다른 주인공 오노는 성적으로 문란했던 어머니로 인하여 여자 기피증을 얻게 되었고 게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고등학교 졸업식 때 타치바나에게 고백했다가 엄청난 모멸감을 받은 상처가 있다. 졸업 후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던 오노는 프랑스 유학도중 천재파티세로 불리던 쟝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파티세로서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뜨게 된다. 프랑스에서 파티세로 성공하여 귀국한 오노는 마성의 게이라는 자신의 별명답게 때로는 자신의 의지로,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취직한 직장마다 애정문제를 일으켜 해고된다. 솜씨는 일류지만 인간관계에 능숙하지 못해 번번이 정착에 실패하던 오노는 “엔티크”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 칸다 에이지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고아로 어린 시절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싸움꾼에 문제아였으나 자신을 양자로 삼아준 권투체육관 관장님을 부모처럼 따르며 권투에 매진하는 성실하고 매력적인 청년으로 자라난다. 깔끔한 외모와 엄청난 하드 펀치로 ‘링 위의 자니즈라 불리며 세계챔피언까지 올랐으나 망막박리가 오면서 권투선수의 길을 포기하게 된 에이지는 자신이 권투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인 단것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준 오노의 케이크에 반해 제자로 들어가면서 파티세로서의 제 2의 인생길을 걸어간다.
천재적인 솜씨와 창의적인 감각을 지녔으나 자신의 직업에 ‘그저 돈벌이라는 마음 외에는 큰 자긍심을 갖고 있지 않던 오노는 탁월한 미각과 성실함,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케이크를 사랑하는 에이지의 재능을 접하게 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아무런 목표도 없던 삶에 나타난 ‘사랑스러운 제자는 오노에게 따뜻함과 자긍심을 심어주면서 오노가 잊고 싶어 했던 많은 것들과 피하고만 싶었던 많은 것들에 정면으로 대항할 힘을 선사한다.
가장 엉뚱하면서도 대책 없는 순진무구함으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치카케는 타치바나에게는 듬직한 정신적 버팀목으로, 오노에게는 가슴 설레는 대상으로, 에이지에게는 좋은 조력자로서 작품의 저변을 지탱하는 힘을 주는 주인공이다.
| [서양골동양과자점> 의 주요 등장인물 | |
그 외에도 요시나가 후미 특유의 개성 넘치는 조연들이 등장하여 주인공들과 엮어가는 사람냄새 풍기는 이야기들은 작품의 아기자기함을 살려주며 특히 아름답고 달콤한 케이크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전문적인 고찰이 따뜻하고 잔잔한 에피소드와 잘 어울려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요시나가 후미는 작품 속에서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차분한 통찰력을 발휘하는데, 일상의 아주 미세한 한 지점, 그러나 소통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삶의 한 조각을 발견하여 그 따뜻한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작가로서 최고의 재능이며 독자로 하여금 계속 이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게 하고,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특유의 위트로 감춰놓은 따뜻함의 마술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지닌 요시나가 후미만의 무기이자 재능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 중에 드라마적 구성이 가장 잘 살아있는 대표작 “서양골동 양과자점”은 “앤티크”라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실제 자니즈 프로덕션 소속의 스타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칸다 에이지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원작과는 다소 다르지만 이 만화를 좋아하는 팬에게라면 한번 쯤 권할 만하다.
- 기본 정보 - 책 제목 : 서양골동양과자점 작 가 : 글/그림- 요시나가 후미 출 판 사: 서울문화사, 총4권(완결) |
2006년 12월 vol. 46호
글 : 안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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