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나믹스 - Tsunamix (우미노 츠나미 작품집)
단편집을 읽는 매력은 짧은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삶의 비밀을 잡아내는데 있다. 그것이 SF던, 순정이던, 액션이던 간에 장르에 상관없이 그 작가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조된 짧은 이야기 속에 묵직한 진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을 때, 단편의 매력은 극대화되는 것이다. ...
2007-06-22
석재정
단편집을 읽는 매력은 짧은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삶의 비밀을 잡아내는데 있다. 그것이 SF던, 순정이던, 액션이던 간에 장르에 상관없이 그 작가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조된 짧은 이야기 속에 묵직한 진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을 때, 단편의 매력은 극대화되는 것이다. ‘계란은 냉장고를 열면 언제나 들어있고 싸고 맛있는데다 제법 오래 가서 늘 당연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계란말이’ 중에서 평안하고 안정적인,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여대생 사야코는 대학교 졸업식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 찾아온 위험한 남자들로 인해 황당하고 답답한 일을 겪게 된다. 삼촌의 빚보증을 잘못 선 부모님 덕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도 모자라서 어떤 부자가 원하는 우수한 유전자 덕에 자신의 난자를 제공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할머니의 오빠는 소설가, 집안에 올림픽 선수까지 있었던 우수한 가정환경에다가 자신은 발레와 플롯에 특기가 있고 머리까지 좋은데다 아름다운 외모까지 덤으로 있었기에, 모자란 빚을 갚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난자제공자로 체택된 것이다. 수상한 남자들에게 이끌려 밀실에 가두어진 체로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자신의 난자를 키워가던 사야코는 평상시 별로 관심조차 없었던 인간의 진화와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선 좋은 종끼리 교배를 시키고 쓸데없는 열매는 버리는 법이야. 이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개량되고 진화되어 왔다고!! 인간의 진화에 그딴 싸구려 감상 따윈 필요 없어!!” “하지만, 맛이 좋아지면서 야채의 영양가는 옛날보다 적어졌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누구나 맛있는 쪽을 선택하지.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라고” 첫 번째 단편 “계란말이”편에서 미스터라 불리는 수상한 남자와 사야코가 밀실에서 나누는 대화들의 일부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삶의 궤적을 한 순간 꿰뚫는 작가의 기지를 볼 수 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특별한 목적이나 꼭 이루고 싶은 소원 한 가지씩은 있겠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지구상 모든 생물들의 강력한 본능이자 이 세계 자체가 유지되는 우주의 인과율이다. 흔히들 영화나 만화, 소설 등에서 미화되어 다루어지는 약육강식의 법칙, 우수하고 뛰어난 자는 살아남고 약하고 뒤떨어지는 자는 도태된다는 냉혹한 자연의 법칙은 기실 유전자를 남기려는 모든 생물의 강력한 본능이 조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하려 해도 인간이나 동물들이나 주어진 삶은 몇 가지의 강력한 이런 본능들이 행동의 대부분을 결정하게 때문에 세상은 어쩔 수 없이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고 돈이고 움직이는 거야, 나도 이젠 멈출 수가 없다고...” 자신의 난자를 키워가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모성본능을 비롯한 많은 감정들을 깨달은 사야코는 물장사를 해서라도 빚을 갚겠으니 제발 그만 둬 달라고 미스터에게 애원하지만 미스터는 위의 대사를 냉정하게 내뱉으며 사야코의 정신을 빼앗는다. 정신을 잃고 침대위에서 눈을 뜬 사야코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이 단편을 읽은 독자들이 다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무언가 가슴 한 켠에 묵직한 것은 남아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