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오다
한국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접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단 수많은 문학작품을 비롯해서 만화,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뤄지는 한국의 아버지 상은 고약하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일방적이다. 자상한 아버지를 다루는 콘텐츠들도 간간히 있지만 ...
2007-05-31
장헌길
한국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접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단 수많은 문학작품을 비롯해서 만화,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뤄지는 한국의 아버지 상은 고약하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일방적이다. 자상한 아버지를 다루는 콘텐츠들도 간간히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상품에서 아버지는 하나의 억압기재일 뿐이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의 존재는 억압기재 이상은 아니다. 다만 사위의 눈으로 본(가족의 눈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버지’는 좀 더 다른 인간적인 면과 아픔, 그리고 그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슬픔을 가진 존재일 뿐이라는 것, 그러한 시각이 하나 추가되어져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또 다른 시각의 시선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그간 단순히 ‘억압기재’로만 여겨졌던 아버지의 존재가 좀 더 부드러워 보이고,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마술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안 팔리는 만화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주인공과 그런 그를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 그리고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약속으로 1년을 같이 산 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그렇듯,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전세금까지 빼서 중도금으로 넣은 후 주인공 부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친정으로 갈까? 본가로 갈까?, 아니면 시댁으로 갈까? 처가로 갈까? 너무나 당연하고 직선적인 고민이지만 사실 이건 현실이다.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주지도, 무시하지도 못한다. 많은 고민을 거쳐 이 대책 없는 젊은 부부는 아내의 본가, 즉, 처가로 들어간다. 장모님은 매우 못마땅해 하지만 청주에서 경찰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사는 장인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유는 오직 하나, ‘딸자식이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사위가 처가살이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고, 병원에서의 진단 결과는 위암이 많이 진행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무능력한 사위는 장인의 건강을 걱정해 신혼생활을 접고 처가살이를 선택한 착한 사위가 되고,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던 큰 아들은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가장이 되며, 소심했던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효자로 변하는 것이다. 이 모든 정치적인 공작은 아주 오랜 옛날, 자신에게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맡겨놓고 바람이나 피던 못된 남편 때문에 결국은 뇌출혈까지 왔던 진정한 집안의 가장, 부녀회장 어머니의 정치력 때문이다. 이 모든 부조리와 억압된 상황에 반기를 드는 것은, 어머니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는 말을 들으며 짜증냈던 딸이고, ‘그래도 내 딸이 최고야’라는 말을 들으며 아버지로부터 모순된 사랑을 받던 철없는 딸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병든 시점부터 아내의 뱃속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는 묘한 우연이 이 작품에 약간의 드라마를 부여한다. 장인이 죽은 그 날부터 사위의 눈에만 죽은 장인의 모습과 말들이 들린다는 설정으로 장인의 49제까지 담담하고 치밀하게 한 가족의 가장의 죽음을 관찰하는 이 만화는 마지막, 또는 그 어떤 과정에서 한순간의 뭉클함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그것은 리얼함이 주는 하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아버지들은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피곤하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