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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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의원

한 달에도 수백 종씩 쏟아져 나오는 만화들을 보고 있자면,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만화가별로 그림, 스토리, 연출 등 만화를 그리는 작법들이 다 제각각 이구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게 생각하면 작가별로 개성이 다르구나 하는 ‘문화의 다양성’이란 결론에 ...

2007-04-26 석재정
한 달에도 수백 종씩 쏟아져 나오는 만화들을 보고 있자면,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만화가별로 그림, 스토리, 연출 등 만화를 그리는 작법들이 다 제각각 이구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게 생각하면 작가별로 개성이 다르구나 하는 ‘문화의 다양성’이란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작가별로 재능의 차이가 명확하구나 하는 지극히 ‘운명론’적인 결론에 도달할 때도 있다. 사실 그림이나 이야기, 또는 그런 모든 것을 읽어나갈 수 있게 풀어나가는 연출법 등을 평가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대고 있다. ‘슬램덩크’가 아무리 만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라도 그런 만화가 싫다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꽃보다 남자’가 아무리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비판을 받아도 이런 것이 진정한 만화라고 얘기하는 독자층이 있는 것이다. 어느 음악 평론가의 말처럼 ‘평론(또는 비평)은 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개인적 취향에 따른 평가가 결코 작품을 대하는 기준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 되면 잔인하고 명확한 기준점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상품’이란 팔리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므로 ‘상업 작가’라면 ‘팔리는 만화’를 그려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작가’의 운명이자 괴로움이다. 맨 처음 언급했듯, 그것이 운명론이든, 다양성이든 간에 다른 작가에 비해서 유난히 튀고 돋보이는 재능을 소유한 빛나는 작가들이 몇몇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작가들 중에서는 굳이 이현세의 전설을 논하지 않더라도, 원수연, 박희정, 이강주, 나예리, 김준범, 윤태호, 권가야 등이 그런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다른 어떠한 작가와 비교해도, 바다 건너 만화 왕국 일본의 대표 작가들하고 비교해도, 이들은 결코 묻히지 않을 그림과 작법을 완성한 작가들이며 자신만의 색깔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개성적인 스타일리스트들이다. 그러나 개성적인 스타일리스트건, 묻히지 않을 그림과 작법이건 간에 ‘상품’이 되면 기준점은 딱 하나로 바뀐다. ‘잘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 개인적으로 그런 포스가 느껴진다고 언급한 위의 작가들 중에도 전자의 케이스와 후자의 케이스가 명확하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는다 해서 결코 그들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까도 지적했듯이 그것은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위의 목록에 한명을 더 추가하자면 여기에 소개하는 ‘교무의원’의 임광묵을 추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서사적인 스토리에 클래식한 연출법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그의 스토리나 연출법에 쉽게 적응되지는 않지만, 그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과 감각적인 연출, 그리고 무언가 오묘함이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지프러스’를 2권에서 중단하고 예전에 엠파스 웹진에 잠깐 신작을 발표한 후로 지금은 작품 활동을 쉬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교무의원’은 새로운 감각의 무협물을 원하는 독자라면 적극 추천한다. 바보 같기도 하고 천재 같기도 한 주인공 교의가 그 멍한 표정에서 일순간, 귀기가 번뜩이는 무사로 변하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섬뜩함과 신선함을 던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