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북극성 (오피스 북극성)
진정한 성인만화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서야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만화를 지칭하는 안 좋은 뜻의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만화왕국 일본에서는 성인만화란 말 그대로 성인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지칭하는 바른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와 삶의 애...
2007-04-24
장헌길
진정한 성인만화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서야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만화를 지칭하는 안 좋은 뜻의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만화왕국 일본에서는 성인만화란 말 그대로 성인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지칭하는 바른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와 삶의 애환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마 과장’시리즈라던가, 눈물을 흘리는 킬러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통해 잔인하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크라잉 프리맨’이라던가, 격동기 일본 정치의 어두운 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사회의식을 심취시키는 ‘메두사’라던가 등등 정말로 다양한 장르에서 일본의 성인만화는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보고서는 쉽사리 공감이 가지 않는, 무거움과 진지함, 풍자의식을 지녀서 어른들만이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진정한 성인 만화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정의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소개하는 ‘오피스 북극성’도 일본 성인만화의 힘을 진지하게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리스크 컨설턴트’라는 독특한 직업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 고우가 미국을 무대로 펼쳐내는 사람 냄새나는 에피소드들이 독자의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를 남기는 이 만화는 기업과 사람, 자본과 사람, 사회와 사람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주제를 통해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는 작품으로서 전문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가질 수 있는 강점(미국과 일본의 기업 문화의 차이점, 미국 사회에서 재판이 갖는 의미 등)과 어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과 여동생의 미래를 망쳤다는 이유로 사상 초유의 100만 달러짜리 소송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청구한 14살의 소년 크리스 이노우에 벅화이트는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1세대다. 크리스가 청구한 위자료 소송의 요지는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과 여동생이 받은 엄청난 정신적 피해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데, 절친한 친구 변호사 바바라의 소개로 일을 맡게 된 고우는 크리스의 마음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크리스의 곁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개들이 바람피운 것도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봅이 있고 크리스의 ‘장난이 아니니 진지하게 생각해 달라’는 말에 고우와 봅은 재판의 실마리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인 메이러 벅화이트는 약물중독으로 폐인이 되어 요양원에 있기 때문에 재판을 받을만한 상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고우와 봅은 소재불명이 되어버린 일본인 아버지 이노우에 미치오를 찾아내려 애쓴다. 요양원에 가서 메이러를 만나 본 고우는 이 부부의 이혼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양국 간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겨우 찾아낸 일본인 아버지 이노우에와 친 아버지를 고소한 아들 크리스가 법정에 선 날,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의 방식이 다른 동양인과 서양인, 일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다른 동양인과 서양인, 그리고 부모로서 자식을 책임지는 자세가 서로 다른 동양인과 서양인의 적나라한 차이가 바로 이 소송의 원인이 되었음이 밝혀진다. 결국 일본인의 가치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와 배심원에 의해 이노우에는 패소하고 고우는 이 재판의 의미와 이노우에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방식을 설명해달라는 바바라의 말에 경직된 얼굴로 조용히 대답한다. “내가 그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이런 사건 그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