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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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을 각오 없이 일본에서 만화가 되기

만화의 왕국이라 불러도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나라 일본, ‘망가’라 불리는 일본의 만화들은 세계 각지의 만화시장을 잠식하고 그 왕성한 생산력과 독특한 기획력으로 각국의 문화산업 곳곳에 침투해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던 미국의 코믹스 시장도...

2007-03-27 석재정
만화의 왕국이라 불러도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나라 일본, ‘망가’라 불리는 일본의 만화들은 세계 각지의 만화시장을 잠식하고 그 왕성한 생산력과 독특한 기획력으로 각국의 문화산업 곳곳에 침투해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던 미국의 코믹스 시장도 이미 50%이상 일본의 망가가 잠식해 버렸다하니 정말 일본의 만화산업은 이제 세계의 문화중 하나로 그 단단한 성벽을 굳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꽤나 독특한 제목의 책이 하나 나왔다. 만화의 형식을 띠고는 있으나 사실 일반적인 만화라 하기엔 좀 약한 면이 있고 그렇다고 만화가 아니라고 할 수 도 없는 바로 배준걸 작가의 ‘굶어죽을 각오 없이 일본에서 만화가 되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실제로 일본으로 건너가 3년여의 수행 끝에 프로 만화가로 데뷔한 한국 청년의 이야기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극화나 코믹만화가 아니라 일종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생활 1년차, 2년차, 3년차의 단락으로 나뉘어 작가가 군대를 재대하고 만화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맨손으로 건너간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재미있게 만화로 바꾼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내용적으로 분류하자면 수행과정, 일본 생활, 한일문화의 차이,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는 법, 일본에서 사귄 사람들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지침서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서적의 기능과 일본에서 적응해가는 모습들을 진솔하게 담아낸 일종의 에세이역할을 수행하는 두 가지의 기능이 있는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두 가지가 잘 어우러져 있어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아무런 제약도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배준걸이라는 만화가 지망생의 꿈에 대한 열정과 진솔한 인간관계가 주는 잔잔한 감동이 이 특이한 일본 유학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 힘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족처럼 지내게 된 의형제, 의남매 등과의 에피소드나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아도 만화라는 세계 공용어를 믿고 과감하게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꽤나 진솔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간간히 그림으로만 잠깐씩 소개되는 배준걸 작가의 데뷔만화가 무척이나 궁금한데 언젠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단행본으로 나온다면 꼭 한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두 명의 프로 만화가가 작가의 콘티를 읽고 성심성의껏 다듬어 준다는 에피소드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자신이 가족처럼 여기며 의지했던 할머니 댁에서 밤새워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에피소드와 국경을 넘어 자신의 친손자를 보내듯 계속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오던 할머니의 에피소드 같은 것은 무언가 가슴을 찡하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작가는 말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맨손으로 건너온 일본에서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가슴으로 진정한 교류를 나누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