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애장판
유시진의 「온」이 돌아왔다! 시공사의 성인 여성 만화잡지 『오후』가 폐간되면서 뒷이야기의 행방이 묘연해졌던 「온」은 지금 [코믹뱅](http://comicbang.com/)에서 연재를 재개한 상태다. 판타지 소설가인 하제경은 우연히 본 동화책의 일러스트에 흥미를 가지고...
2006-12-31
장은선
유시진의 「온」이 돌아왔다! 시공사의 성인 여성 만화잡지 『오후』가 폐간되면서 뒷이야기의 행방이 묘연해졌던 「온」은 지금 [코믹뱅](http://comicbang.com/)에서 연재를 재개한 상태다. 판타지 소설가인 하제경은 우연히 본 동화책의 일러스트에 흥미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 사람의 집에 찾아간다. 그러나 문제의 일러스트레이터 이사현은 뜻 모를 질문과 행동으로 제경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러는 와중에도 제경은 사현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점점 더 깊이 끌리게 되는데…. 처음부터 암시되는 두 사람의 비밀스런 인연은 독자로 하여금 뒷이야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마치 책 속의 이야기와 현실이 뒤섞인 듯한 초반부의 상황은 조금 오싹하기까지 하다. 독자를 안달하게 만드는 미스테리어스한 전개는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의외로 작가는 비밀에 집착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단과 사미르, 서로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은 운명의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온」의 매력은 비밀에 싸인 과거나 하제경의 귀여운 재롱(?) 등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나단의 심리묘사가 아닐까. 사미르와 같이 스스로 완성된 자는 젤처럼 절대적인 숭배자를 만들어 내거나, 나단처럼 이끌리면서도 반발하는 배교자를 불러들인다. 태양을 동경하고 더없이 사랑하면서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고 싶은 이중적인 감정. 그러한 감정은 크든 작든 인간 내면에 항상 숨어있다. 마치 부질없는 질투심을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것처럼. 또 나단의 절망과 고독은 우물, 사막, 어둠 등으로 대치되어 손에 잡힐 듯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말이나 문장으로 묘사하려 해도 갈피를 잡아내기가 녹록치 않은 그 꼬인 감정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연출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나단과 교감함으로서 자신의 어둠을 발견하는 순간- 그 카타르시스는 간단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채워진 자’와 ‘비어있는 자’라는 남자 콤비의 상반된 구도, 소통의 부재, ‘비어있는 자’의 집착과 질투로 인해 ‘채워진 자’가 파멸한다는 공식은 전작 「폐쇄자」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폐쇄자」가 부서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면 「온」은 부서지고 난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폐쇄자」와 「온」은 같은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온」이 어떻게 결말을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 끝나버린 지금에 와서야 겨우 사미르와 나단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젤이 지적했듯이, 이제 와서 그런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다시는 그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하지만 낙원에서 쫓겨나도 인간은 여전히 살아있다. 사미르는 자신이 텅 비어버리고 나서야 주위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괴로워하는 나단을 발견했다. 아직 많이 힘들고 아픈 기억이지만, 아마도 그들은 서로 소통함으로서 이번에야말로 함께 성장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사현의 말처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봄이 오면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