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기준 없이 좋아하는 책을 꼽아보라면, 의외로 그렇게 많이 손가락에 꼽히지는 않는다. 이 작가의 이 작품이 어떠한가를, 나만이 이런 충만한 감동을 느끼는 가를 함께 독자들과 나눠보고 싶어도 번역 출판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 그 의혹의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원래 4월 17일로 예정되어있었던 비로플레(Viroflay)라는 도시의 도서관에서의 <작가와의 만남> 이, 한 시의원의 “ 우리 시가, 이렇게 포르노그라피와 호모섹슈얼리티를 변호하는 작가를 맞이한다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라는 주장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그렇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나 보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성이며, 그는 동성에게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작품을 이런 두 마디의 폭력적인 언어로 매도한다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다. 1996년에 1권이 출판된 이후 현재 4권까지 출판된 그의 일기는 한낱 훔쳐보기적 쾌락을 주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건, 눈이 낮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 읽기의 즐거움을 기어이 쾌락으로 규정하고 싶다면, 그 쾌락은 굉장히 서글프고 섬세한 아픔을 동반해야만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일기> 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은 작가와 그를 둘러싼 내부와 외부에 대한 그의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예술적 비판과 반성을 보여준다. 모든 픽션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자서전이 현실과의 일차적인 전쟁을 선포하지는 않는다. 쉽사리 페이지를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진정한 오랜 사색의 결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선의 풍요로움 덕분이며, 전체 페이지 구성의 설득력 때문이다. 그리하여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이 작가의 진정한 투쟁정신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무릎 꿇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그의 진지함을 아끼면서 말이다.
총 112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출판되자 말자 앙굴렘 페스티발에서 감동상을 수상했다. 1992년 2월에서 1993년 9월까지 그가 이 작품을 시작하기 이전, 때때로 들어오는 다양한 작업주문이외에 딱히 일거리가 없었던 시기가 다뤄진다. 이 당시 만난 스테판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걸쳐있는데, 총 112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화자가 결국은 그 사람과 헤어지면서 끝난다. 우리가 볼 부분은 88페이지부터 시작하는, 1993년 7월 13일라고 표기된 마지막 에피소드의 앞부분이다. <마지막> 은, 결국 지금부터 보게 되는 사건이 어떻게 그의 내면의 파괴와 황폐함을 불러일으키느냐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는 계속, 누군가와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지는 스테판이 애인과 헤어지면 자신에게 돌아오며, 또 누군가가 생기면 쉽사리 자신을 떠나버리는 것에 지쳐있기 때문이다. 88페이지부터 4페이지 반에 걸쳐, 그는 공원에서 스테판을 보게 될 때까지의 30분을 그려내고 있다. 마치 밤의 산택과도 같은 조용한 그림체는, 곳곳에 끼어드는 시간을 지시하는 <몇 분, 몇 초 전> 이란 말로 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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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런
...화장실의 문 하나가 닫혀있다.
2/2분 30초(그가 스테판을 보기 2분 30초가 남았단 소리)
그는 많이 변했다.
3/ 문은 저항한다. 마치 자백처럼 ; 그리고 내일이면 우리는 외투를 치워버릴 것이다.
그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되었다.
4/ 1분 35초. 나는 다시 둑 쪽으로 올라왔다
5/ 1분 10초. 그의 차는 여전히 거기에 서있다. 하지만 그를 찾을 수가 없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6/ 45초.
문이 열렸다.
7/ ...지금 나온 그 사람은 심지어 나오면서 조심하지도 않는군.
주변을 전혀, 하나도 둘러보지도 않는다.
37초
9/ 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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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그의 차 가까이에 머물러 있기로 결심했었다. 만약...
나방들이 가로등에 부딪힌다.
스테판이 나타나기 7초전
...마치 우리가 언제가 빛에 맞부딪히는 것처럼
2/ 2초
그는 어디에 있지?
3/ 1초
4/ 0
7/ 사흘 동안 나는, 집에 머물렀다.
아르보 파트(Arvo Part)의 캉튀스(Cantus)를 20번을 들었다.
아주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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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이 네 번 전화해서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겼다.
알랭이 한 번 전화를 했고, 내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2/ 낮 동안에 나는, 스테판의 커다란 초상화를 계속해서 고쳤다.
또는 내 만화 페이지들에 손을 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아르보 파트를 들었다.
3/ ...그리고 <순수이성비판> 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것이 나를 전혀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서.
그리고 내가 진짜 일을 찾아야 한다고도 중얼거렸다
4/ ...마치 내가 일을 찾으면 모든 것이 나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어릴 때의 오래된 공포를 다시금 생각했다.
5. 알랭과 함께 은퇴자 주택의 장식물을 끝내야 한다.
나는 로익에게 전화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지만, 할 수 없었다.
6. 그리고 나는 다음 주 화요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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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도시에는 특별한 빛과 낯선 형태들이 있다.
2/ 남쪽 우회도로로 지나는 차들은 내게 파리의 도시순환도로를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것이라곤 없다
잡지 표지는 여전히 늦장을 부리고 있다. 내가 볼 때 이 표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필수불가결 한 것이 되어가는 것 같다.
3/ 알랭과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싸운다.
“너 정말로 말을 함부로 하네.”
알랭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다,
4/ 과다한 상실 없이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5/ 무엇인가 잘 되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나를 빠져나간다. 무엇인가가 부셔지고 있다.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6/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이 진행 중인 무언가는,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 바로 직전에 스스로 무너져버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나를 빠져나간다.
7/ 7월 말. 화요일. 도저히 잊어버릴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할 수 없다.
나는 공원으로 올라갔다. 손에는 한 장의 사진을 넣은 우편봉투를 쥐고서.
아마도 그의 눈을 가리고 싶었을 지도. 범죄자처럼이라도 말이다. 그러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을 텐데. 충격엔 말이 필요 없는 법. 단지 점점이 뿌려진 흔적만이 그의 충격을 백지 속에서 표현한다. 계속해서 2번째 페이지 하반부에 나오는 그 포즈를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가리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한다. 그리고, 스물스물 기어올라 오는 암흑은 결국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비록 아무리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려 할 지라도. 이후 점점이 혼자서의 생각은 주변과 무관하게 계속 이어진다, 그다지 커다란 연관성 없이. 4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칸은, 1주일, 또는 2주일이 지난 이후, 88페이지와 마찬가지로 다시 공원에서 시작하며, 열려진 문은 이 다음에 벌어질 사건으로의 입장을 지시한다. 이 문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무엇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최소한 자신과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면 이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출간된 전권을 시간을 들여서 읽어도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언젠가 그 즐거움을 함께 누려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