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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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 말랑 (현란한 떡들의 맛있는 반란)

여성작가들 경우, 개그만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늘씬하고 상큼한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해 로맨스를 펼치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기 때문에 여성만화가들의 경우는 순정작가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석동연’의 위치는 특별하다. 1990년대 후반 데뷔한 이후...

2006-12-26 김미진
여성작가들 경우, 개그만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늘씬하고 상큼한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해 로맨스를 펼치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기 때문에 여성만화가들의 경우는 순정작가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석동연’의 위치는 특별하다. 1990년대 후반 데뷔한 이후 줄곧 4컷 개그만화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랑말랑」은 그런 그녀의 재치를 한껏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다종다양한 ‘떡’을 의인화화 하여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흰색 송편의 엄마로부터 다양한 색깔로 나누어진 송편이 태어난 것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무지개떡과의 연정으로 돌리는 대목은 TV 미니시리즈에서 나올 만한 소재를 단 몇 컷으로 압축시켜 놓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일상을 비유하고 있는 가운데 작품이 보여주는 특별함은 특히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면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흰색 피부로 백설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백설기’ 떡은 용한 무당이 자신의 배필로 검은 콩이 박힌 콩설기나 건포도 설기를 추천해주지만 점탱이는 싫다면서 고개를 돌리는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꼬집는다. 또, 인절미와 쑥떡을 등장시켜 ‘휘날리는 콩가루 향기’와 ‘싱그런 쑥 향기’를 이야기하며 첫사랑의 수줍은 마음을 담아내기도 하며, 유명한 가수로 등장하는 가래떡을 쫓아다니는 떡뽁이떡으로부터 유명인들에 관심이 많은 우리 청소년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가수로 데뷔한 송편들이 노래는 안 부르고 각종 쇼프로에 섭외되는 것을 ‘가수의 기본’으로 표현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 담으면서도 작품이 결코 놓치지 않는 것은 개그만화가 필수적으로 담고 있어야 하는 ‘웃음’이다. 개별적인 떡들의 특성을 살려 각 에피소드마다 즐거운 언어유희와 반전을 보여준다. 이는 현실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떡 종류별 각각의 특징에 맞추어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보여주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흰 송편, 분홍송편, 쑥 송편을 모아 “영떡스 클럽”으로 데뷔를 준비한다거나, 가래떡을 ‘훤칠한 키에 쭉 빠진 몸매’로 묘사하여 잘 나가는 가수로 등장시키는 장면, 혹은 가래떡처럼 미끈한 참기름을 바르고 싶지만 떡볶이 떡이기 때문에 고추장을 발라야 한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떡들의 개성을 만화적인 재미로 가져온 경우다. 토속적인 소재인 만큼 작품은 곳곳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과 인정을 떠올리는 대목이 나타난다. 옆집에 누군가 이사 온 것을 보며 ‘예전에는 인사차 시루떡을 돌렸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시루떡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잘생긴 신랑, 신부를 얻는다는 이야기는 떡에 얽힌 우리 고유의 풍습을 보여준다. 또, 할머니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정겹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떡들이 다 잡아먹혔으니 이건 엄청난 비극이다.’라며 비분강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떡들에게는 비화가 되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말랑말랑」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가 평상마루에 앉아 놀던 광경이 스친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는 작품 중간에 “내 6살 때 ‘넌 커서 뭐가 될래?’하시는 할머니의 물음에 뜬금없이 ‘떡장수!’라고 말했다.”면서 “세월이 지나 이 만화를 그리니, 그때 난 나의 앞날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라고 어린 시절의 일을 추억한다. 이처럼 떡은 케이크와 쿠키에 추억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소중한 우리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