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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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인간과 함께 사는 인간 같은 동물들의 인간적인 이야기)

humanit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의 속성, 인간다움’이라는 의미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대체 ‘인간답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에 들어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신문과 TV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기 자...

2005-08-16 김성훈
humanit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의 속성, 인간다움’이라는 의미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대체 ‘인간답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에 들어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신문과 TV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기 자식을 굶겨죽이는 부모,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여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고용주 등 우리 사회에는 짐승 같은, 아니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함께 살아간다. 그들이 과연 『휴머니멀』이 전해주는 ‘휴머니티’를 이해할 수 있을까? 『휴머니멀』 속 단편들로 이어지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모두 동물이다. 쥐, 곰, 강아지, 두더지, 비둘기 등 갖가지 동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러나 전혀 ‘동물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인간보다 더한 인간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며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주고는 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기 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일테면 쥐는 지저분하고, 곰은 감정적으로 무디며, 두더지는 왠지 모르게 음침하다는 식의 선입견을 부순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때로는 인간보다 더 맑고, 인간보다 더 감성적이며,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우화 속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시사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작품들은 내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질 수 있겠는데, 하나가 주로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고, 다른 하나가 개인의 감정에 대한 부분이다. 전자에는 ‘어느 흰 쥐 이야기’, ‘아름다운 미소’, ‘사랑합니다’, ‘수어사이드’, ‘고래가 되고 싶어요’ 등이 속할 것이며, ‘러브스토리’, ‘나에게 쓰는 편지’, ‘당신의 골목은 어떤가요?’ 등이 후자의 영역에 들어갈 것이다. 한편, 작가가 전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느 한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즉, 전쟁, 외국인노동자, 동물(환경), 청소년, 철거민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두루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따뜻한 연민을 보내주고 있는데, 이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러브스토리’), 부모님에 대한 사랑(‘나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당신의 골목은 어떤가요) 등도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점점 퇴색되어 가는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므로 『휴머니멀』이 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 오늘날 인간들이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자 향수이다. 작가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집인 『휴머니멀』의 서두에서 “잊어버린 건 아닙니다. 기억하고 있지만, 현실의 바쁜 시간들이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 이유이기에 잊어버린 건 아닙니다.”면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어렸을 때부터 소망했던 꿈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라고 전한다. 이는 작가가 지닌 개인적인 꿈, 만화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결론도 된다. 바쁘게 살아온 세월이기에, 힘들게 살고 있는 세상이기에 잊어버렸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희망은 우리 모두가 언제나 바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휴머니멀』이 전하는 이야기는 향수와 그리움으로서 끝나서는 안 될, ‘진짜 인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좌표이기도 하다. ‘사람답다’는 것이 어떤 뜻이며 ‘짐승!’이라는 말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단어로 정확한 풀이는 못할지언정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잘 알고 있다. 사람답지 않는 사람이 숨 쉬고 있는 세상,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기에 점점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 되어간다. 인간의 모습을 빌려 입은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휴머니멀』은 어쩌면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을 꾸짖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일으켜 같은 인간끼리 죽이며, 자신과 다른 언어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차별을 하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비정한 인간들의 세상에 대해 동물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것이다.
필진이미지

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