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PAPA (우리아빠)
제목에서는 뭔가 다정한 느낌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리 정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고 야멸차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라는 제목에 조금이라도 따스한 느낌을 기대했던 독자라도 2장 정도만 이 책...
2004-12-21
정모아
제목에서는 뭔가 다정한 느낌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리 정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고 야멸차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라는 제목에 조금이라도 따스한 느낌을 기대했던 독자라도 2장 정도만 이 책을 넘기다 보면 그런 생각이 싹 가셔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 『우리 아빠』는 1961년부터 1970년까지 레제르가 프랑스 최초의 성인 만화 잡지 『하라 키리』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컬렉션 집이다. 여기서의 아빠는 결코 다정한 존재가 아니다. 술을 퍼마시고 아들을 심하게 구타하는 그 모습은 끔찍하다. 아들은 늘 아버지의 술심부름꾼에 불과한 존재다. 아버지에게 조금 다가갈라치면 날아오는 건 주먹이요,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아버지가 휘두르는 벨트다. 아들은 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는 복수를 하겠노라고… 책의 절반 이후에 위치해 있는 ‘그 외의 이야기’들도 결코 만만하게 볼만한 작품들이 아니다. ‘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심’은 하지 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성인을 위한 잡지에 연재되었던 만큼, 『우리 아빠』에 엮어진 작품들의 내용은 꽤 적나라한 느낌을 준다. 크게 드러내놓고 콕 집어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중간 중간에 성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시종 편안한 어투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낸다. 처음에는 작가가 다소 거칠게 말을 걸어와 책을 읽기가 조금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장만 더 넘겨 읽어보면 어느덧 독자들은 그의 만화 속에 눈길을 주게 된다. 묘한 그 매력 속으로… 작가 장 마르크 레제르의 그림체를 보면 약간 휘갈겨 그린 듯하면서도 언뜻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그려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펜을 종이에 대고 한번 ‘쓰윽’그려낸 것 같다. 1983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레제르는 권위와 제도, 문명의 위선을 비꼬는 내용의 작품을 그렸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지만 감출 수 없는 만화에 천재성과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은, 결국 그를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해주었다. 사실 제 아무리 사회에 대해서 통렬한 한마디를 날린다 한들, 우리의 정서가 아닌 프랑스의 정서가 입혀져 있는 작품들이라 다소 이해의 속도가 늦을 수도 있다. 아직은 보수적인 정신이 남아 있는 우리의 머릿속에 프랑스의 이런 자유분방함이란 코드가 맞지 않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40여 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만화에서 보여주는 발상들이, 현재 한국에서의 생각들보다도 더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이렇게 쉽고 간결한 만화를 통해서 프랑스라는 하나의 사회에 살고 있는, 그리고 우리나라보다는 좀 더 개방되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이들의 담론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사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만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작가 레제르가 살았던 당시의 프랑스 성인들이 생각하는 바를 간파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