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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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플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은 TV나 신문 등 매스컴이 표현하는 수위가 그만큼 자유스러워졌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례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풍양속을 헤치거나 불량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비추어졌던 ‘동거’이야기들이 이제는 로맨틱하고 아름답게까지 비쳐지기...

2004-12-16 김성훈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은 TV나 신문 등 매스컴이 표현하는 수위가 그만큼 자유스러워졌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례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풍양속을 헤치거나 불량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비추어졌던 ‘동거’이야기들이 이제는 로맨틱하고 아름답게까지 비쳐지기도 한다. 물론 현실도 매스컴 속의 현실과 마냥 따로 놀고 있지는 않다. 과거에는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그냥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생계형 동거가 주류였지만, 이제는 서로의 생활영역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선택형 동거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거형태들 가운데 대학생들의 동거는 자못 장밋빛 환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박성재가 그림, 박재성이 스토리를 담당하여 만들어낸 <커플>은 대학생 동거의 장밋빛을 그려나가고 있다. 대학 신입생인 유미는 시골에서 상경한 첫날 전세금을 잃어버리고 영호와 함께 살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이 최초에 동거하게 되는 원인에 애정이나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유미로서는 살아가야 할 공간이 필요했고, 영호는 불쌍한 여자 한 명 도와준다는 심정에서 시작된 동거였다. 그래서 영호가 유미에게 동거를 최초로 제안하는 조건은 5만원의 월세였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유미 역시 같은 방을 사용하지만 방 내부에 커튼을 달아 서로 독자적인 공간을 인정하는 범위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연인 사이가 아닌 편한 남녀의 관계로 시작된 계약동거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출현과 함께 점차 감정이 스며든다. 즉, 한영호에게는 서희수, 이혜미 등이 등장하여 유미와의 삼각관계를 유발시키며, 유유미에게는 이대철이라는 인물이 접근시켜 영호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작품은 동거 이후 친구들과 형제, 부모들에게 차례로 동거사실을 들켜버린 후,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차례로 밟아나간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될 수 있었던 뻔한 스토리 전개다. 그 속에서 독자들이 눈독을 들이며 즐겨야 하는 것은 영호와 유미, 두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연애방식이다. 여자와 손잡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영호와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에야 남자와 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유미. 다소 고지식하게 느껴질 만큼의 생각을 지닌 이들이 동거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들에게는 대단한 의식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육체적인 섹스보다는 서로 함께 살아나간다는 공감대가 우선이다. 물론 남성인 영호의 경우 자주 유미와의 성적인 로맨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똘똘하고 착실한 유미에게 영호는 그저 마음씨 좋은 오빠일 뿐이며, 그런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자칫 가벼운 소재로 인해 무분별한 성적 개방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오히려 아기자기하면서도 확실히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진득한 면을 보여준다. 이제 이들의 동거에 존재해야 할 것은 쾌락이 아닌 진지한 책임감이다. 작품은 현실에 회자되는 소재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조금씩 건드리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유미가 호스티스가 되려고 한다거나 과외선생 모집에 오는 여대생을 강제로 덮쳤다는 이야기, 혹은 명품구입으로 인해 빚을 지고 나가요 걸이 되어버리는 여대생 등의 모습 등을 통해 현 세태를 꼬집고 있다. 자칫 흥미위주의 잡담으로 그칠 소재들이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 주변의 문제를 다시금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커플>은 최초에 온라인에서 연재되다가 오프라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미국에 ‘manwha’라는 한국 고유 브랜드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방식을 걸쳐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동거’라는 새로운 생활양식에 흥미를 유발시킨 커플의 결말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 한영호와 유유미의 사랑이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져 서로의 감정에 대하여 ‘책임’질 줄 아는 젊은이으로 표현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세상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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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