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이 작품은 19세기 말 타네다 산토가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방랑시인 타네다 쇼이치의 삶을 그린 만화이다. 한 인물의 삶을 다룬 전기(biography)문학은 서구에서는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된 장르이다. 전기문학 자체가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종교개혁 등이 ...
2004-08-27
이승남
이 작품은 19세기 말 타네다 산토가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방랑시인 타네다 쇼이치의 삶을 그린 만화이다. 한 인물의 삶을 다룬 전기(biography)문학은 서구에서는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된 장르이다. 전기문학 자체가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종교개혁 등이 사회적 현상과 결합되어 나타난 문학형태이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장르이다. 게다가 대중오락장르인 만화에서 실존한 개인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작가인 이와시게 타카시는 일본의 전통 시(詩)인 하이쿠(俳句)를 쓴 한 인물의 일대기를 작가 나름의 해석을 담아 훌륭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타네나 쇼이치의 삶을 단순히 연대기 순으로 그리고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삽입하여 격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격자소설이란 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어 두 개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을 말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야노가 동창회에서 사와키라는 여선배를 만나 시집을 선물 받으면서 19세기 말 쇼이치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는 사건으로 돌아간다. 이런 이중적인 플롯 구조는 쇼이치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그의 시가 현재의 인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쇼이치의 삶을 단순히 그리기 보다는 그의 시가 가지는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작가는 쇼이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자살 사건을 도입부로 설정했다. 어린 쇼이치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슬픔 속에서도 어린 하녀의 생리장면을 목격하고 성적 욕망을 느낀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쇼이치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성적욕망과 죽음충동의 모순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쇼이치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성적 욕망의 충돌은 그의 삶을 지배하는 모순적 감정이다. 작가는 쇼이치라는 인물을 분석하면서 방랑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동기를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아기적 도착에 머물러 있는 쇼이치는 영원히 소년기에 머문 아이이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갖고 양조장을 운영을 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른으로서는 무능력을 드러내고, 그의 유일한 재능은 시를 쓰는 것뿐이다. 작가는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현실에서의 좌절, 여성에 대한 동경과 죄의식 등 인물의 내면 세계를 쇼이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인물의 성격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을 내리고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전기문학의 형식을 띠고 있다. 아내와 가족을 버리고 평생 기인으로 불리며 떠돌이 생활을 했던 시인 타네다 쇼이치의 삶과 시에 대한 열정을 통해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역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무미건조한 삶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시를 통해 그의 삶을 추적해보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이면서 만화만의 장점인 글과 그림의 결합을 적절히 구사한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