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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약한영웅 평론> 경계 너머의 소년들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 <약한영웅>

2023-11-13 윤상훈

<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

* 대상: 불행의 가능성에 대한 노트 - 「집이 없어」론, "작품: 집이 없어" 

* 최우수상: 학원 액션물에 대한 또다른 시선 ONE, "작품: ONE"  

* 우수상: 작품 인물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 "작품: 닭은 이외로 위대하다"  

* 우수상: 무제(無題), "작품: 요나단의 목소리"

* 신인상: 조각난 인간을 향한 응시와 그 개인화 ― 연상호의 만화 『계시록』 읽기, "작품: 계시록" 

* 신인상: <웹툰 약한영웅 평론> 경계 너머의 소년들, "작품: 약한영웅"



신인상: <웹툰 약한영웅 평론> 경계 너머의 소년들



[ 서패스, 김진석 작가의 <약한영웅> ]


boys will be boys

 소년은 아직 소년이다. 이제 막 어른에 준하는 육체를 가지게 되었지만 소년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므로 어른들과 교류하거나 세계를 설계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육체 성장은 어른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소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른들이 설계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순응이다. 어른 세계로의 진입이 유예된 소년들은 그들만의 룰이 허락된 세계인 학교에 머문다. 그리고 학교를 배경으로 소년들이 분출하는 에너지는 폭력으로 수렴되어 출판만화와 웹툰에서 ‘학원액션’ 장르로 고착되었다. 학원액션이란 장르명에는 어떤 완곡함이 깃들어져 있는데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부터 켜켜이 쌓여 구축된 스토리 원형과 전형적인 캐릭터와 이미지들은 비판적인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장르에 ‘학원폭력물’이라는 이명을 부여하게 했다. ‘액션’과 ‘폭력’ 간에는 사전적 의미뿐 아니라 가치판단의 개입 여부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비단 만화뿐 아니라 다양한 컨텐츠에서 ‘액션’은 언중(言衆)에 각인된 가치중립적인 장르명이지만 ‘폭력’은 어떤 단어와 짝을 맺든 부정적 의미로 귀결된다. 요컨대 ‘학원폭력(학교폭력)’은 근절해야 할 사회악이 명백한바, 학원폭력물이라는 장르명은 사실상 멸칭이다. 이 장르를 표방하는 많은 작품은 폭력의 방향과 명분으로 선과 악을 재단하지만 끝내 주목받는 것은 폭력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학원폭력물 속에서 폭력은 용인되고 가끔은 숭배된다. 그러므로 의례 따라붙는 ‘폭력을 미화하고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유해매체’라는 꼬리표는 이 장르의 숙명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이고 히스테리컬한 비난 역시 온당하지는 않다. 독자들이(특히 청소년 독자들이) 학원폭력물에 감응하는 이유를 그들이 특별히 폭력을 동경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놀랍도록 지나친 비약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폭력성의 발현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폭력이 과단성의 수단 또는 필요악이라는 것이 이 장르의 주된 변명이지만 이 변명만으론 혐의를 피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학원액션물에서 폭력이 액션판타지의 스펙터클을 견인하는 근원적 수단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 나아 보인다. 이 장르에 속하는 작품에 예외는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완벽한 답이 될 순 없다. 스펙터클의 최적 표현수위와 명분을 찾는 문제를 포함, 연출의 미학적 완성도를 이루고 분명한 주제의식과 의미까지 담을 수 있느냐는 개별작품에게 오롯이 부여된 과제다. 학원액션물이 현실과 판타지에 각각 왼발과 오른발을 딛고 서 있는 한, 그리고 문화 컨텐츠와 현실과의 상호 영향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는 한 이 문제는 결코 등한시될 수 없다. 많은 작품이 반론의 기회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과장된 액션연출이나 캐릭터의 물리력으로 대신한다. “봤지?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단지 만화일 뿐이잖아!” 라고 눙치는 셈인데 소년들의 세계를 다뤘다고 해서 있을 수 있는 비판을 어린 소년들 때 쓰기처럼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사내녀석들이 다 그렇지 머’ (boys will be boys)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다룬다면 작품의 완성도와 성취를 인정받는 대신 폭력을 미화하는 유해매체라는 혐의와 오명의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다.


장르의 유산, 독인가? 약인가?

 웹툰 약한영웅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약한영웅은 분명 학원액션물의 유산을 일부 따른다. 내러티브는 기본적으로 폭력으로 추동되며 장르적 쾌감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지점은 캐릭터와 캐릭터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순간에 있다. 이 물리적 이벤트의 쾌감을 사전에 부양하는 것은 호각에 있는 캐릭터들의 우열을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빌드업 과정에 있다. 작품 속 셔틀 패치 설정은 이를 위한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전개는 약한영웅이 포기하지 않는 장르 클리셰에 속하지만 약한영웅은 독특한 캐릭터 설정으로 이 클리셰를 상당 부분 파쇄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단연 주인공 연시은이다. 왜소하고 연약한 피지컬을 가졌지만 학업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인 미형의 소년. 물론 물리적 힘이 부재한 모범생이라는 캐릭터 설정만으로 약한영웅이 완전히 참신한 작품이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심지어 이 설정에도 약간의 기시감이 존재한다. 과거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학원액션물 속 모범생(또는 평범한) 주인공에게 펼쳐질 두 가지 갈래의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폭력의 세계와 조우하고 강함을 갈구하며 강자들을 꺾어나가는 성장형 캐릭터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약했던 캐릭터가 점차 강해져가는 과정은 RPG게임에서의 레벨업 과정이 그러하듯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의 즐거움이 된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인 <싸움독학> 등을 포함하여 많은 작품이 이러한 전개 방식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장르적 고정관념과 완전히 어긋난 캐릭터를 바로 그 고정관념에 완벽히 복무하는 캐릭터들 사이에 배치하고 오해와 착각의 상황에 빠트려 아이러니의 웃음을 그려낼 수 있다. 야기 노시히로의 <엔젤전설>같은 작품이 그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작품은 학원코믹이라는 장르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와 달리 연시은은 이야기 내내 작가가 부여한 육체적 핸디캡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장르가 응당 요구하는 강함을 온전히 보유한 상대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한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선물한 것은 피지컬이 아니라 뛰어난 두뇌이다. 연시은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그 원형이라 볼 수 있는데 연시은은 상대의 습관, 기질 등을 파악하고 주변 환경과 상황을 읽고 사전에 시뮬레이션함으로서 액션의 최선을 취한다. 영화 <리미트리스>에서 두뇌 능력의 한계치에 도달한 주인공이 물리적 대치상황을 해결하거나 영화 <셜록홈즈-가이리치 감독>에서 실제 액션에 앞서 시뮬레이션하는 시퀀스와 유사한 연출이 약한영웅의 초반부에 등장한다. 피지컬의 한계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승리 공식은 상황에 대한 예측과 판단에서 비롯되는 셈인데 이렇게 캐릭터로부터 비롯된 설정은 작품의 액션 스펙터클에 영향을 미쳐서 기존 작품들의 액션연출과는 상이한(주변 상황과 도구를 활용하는 창의적 시퀀스) 연출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약한영웅만의 액션 연출적 차별성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학원액션물을 답습하지 않은 분명한 차별점이지만 작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이 발견된다. 약한영웅의 장르로서 결정적 차별점과 성취는 액션연출과 작화로 대변되는 스타일적인 요소에만 있지 않다. 


소년세계와 어른세계의 경계

 여타 학원액션물과 명확한 선을 긋고자 하는 약한영웅의 야심은 어른들의 세계와 소년들의 세계의 간극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글 서두에서 밝혔듯이 두 세계는 학원액션물 장르안에서 철저하게 분리된다. 장르의 세계관에 존재하는 힘은 소년들이 생산해내는 폭력이고 학교를 중심으로 소년들의 세계 안에서 유통되고 통제되며 어른 세계로부터 비롯된 힘이 개입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된다. 세계의 분리는 기본적으로 이 장르의 전제이고 불문율이자 공리(公理)이다. 현실 세계에서 어른들의 힘, 특히 경찰력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은 너무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나머지 이 힘이 반영된다면 애초에 학원액션물의 이야기는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학원액션물은 어른들의 세계를 모른척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설령 소년의 눈높이에서 소년들과 겨루는 어른 캐릭터가 등장하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힘은 기본적으로 소년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인 물리적 폭력이다. 예컨대 학원액션물의 주요 소년 캐릭터들이 ‘유예된 어른’이라면 물리적 힘을 사용하여 소년들과 겨루는 어른 캐릭터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약한영웅 역시 작품 속에 공권력을 개입시키진 않는다. 약한영웅의 세계관 또한 실제 현실에 대한 선택적이고 제한된 모델링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의 어른독자들에게 학원액션물에 대한 혐오의 주된 원인이 이 공권력 부재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약한영웅은 설계자로서 어른들과 그 세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못 본 척 하지 않는다. 비록 공권력은 생략했지만 세계를 설계하는 어른들의 힘만큼은 적극적으로 다룬다. 이는 작품 초반부, 액자식으로 구성된 안수호 에피소드에서 드러내고 이후 나백진 에피소드를 통해 반복한다.

 이야기 속 타임라인 상 가장 앞에 위치한 ‘안수호’ 에피소드는 주인공 연시은 캐릭터의 전사(前事)인 동시에 작품이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어른들의 힘에 대한 설정을 밝히는 중요 에피소드다. 중학교 3학년 연시은은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놓친 적 없는 수재다. 그냥 수재가 아니라 강남 8학군 중학교 설정의 ‘벽산중’에서 많은 경시대회 출전과 입상경험이 있는, 명문대 입학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확신을 넘치게 받고 있을 수재 중의 수재일 터이다. 그러나 연시은에게 있어서는 학업의 성취가 곧 인생의 성취와 만족은 아니다. 입시를 위한 성적표에 기록된 점수가 얼마나 훌륭한 소년인가를 증명하는 세계에서 연시은은 끝없는 갈증과 허무를 느낀다. 작품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하는 ‘그레이트 헝거’ 우화는 의미로부터 굶주린 연시은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이다. 소년의 허기를 간파하는 또 다른 소년은 ‘안수호’다. 안수호는 연시은의 허무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을까? 연시은은 세계의 경계 안쪽에 갇혀있는 소년이다. 어른과 소년들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경계를 인지함으로서 갇힌 자의 한계와 갈증을 느끼지만 그 경계를 넘어 세계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면 안수호는 경계 안쪽에 머무르되, 그 경계를 인지함은 물론이고 소년 세계의 바운더리를 은밀히 넘나든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안에 머무른 자의 허무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며, 연시은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수호에게 어른 세상의 원리는 이해를 넘어 간파 가능한 것이고 순응보다는 재설계의 대상인 것이다. 안수호는 어른들이 부여한 기준과 평가를 포함한 학교가 요구하는 룰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소년들에게 제한적으로 허락된 세계의 바운더리를 가볍게 넘나들며 소년들이 하지 못하는 일, 그리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방치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손쉽게 해낸다. 외부 공모전에 입상하여 상금을 받는 일 정도는 하겠노라는 의지만으로 가능하며, 상금을 학급 급식비로 기부하는 것 또한 어른 세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대수롭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담임교사인 방재복이 안수호의 행동에 설명하지 못할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고 이것이 이유 없는 부당한 차별과 질책으로 표출되는 것은 어른 세계의 권위를 침범당한 평범한 어른의 초라한 자기방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년세계의 바운더리를 넘나드는 이 비범함을 평범한 소년들은 감지하지 못한다. 소년들은 안수호가 게임하듯 학급석차 1등을 달성했을 때만 의아함을 동반한 비범함을 다소나마 느낄 뿐이다. 평범한 소년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지 못할뿐더러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연시은은 다르다. 비록 세계의 선을 넘지는 않을지언정 그 경계의 존재를 알고 그 너머를 본다. 학원액션물로서 폭력의 힘 외에 다른 힘에 주목 한다는 것. 정확히는 소년과 어른 세계의 경계와 그 경계를 넘나드는 힘을 내러티브의 주요한 추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이 바로 약한영웅만이 가진 독특한 시각이자 미덕이다.


영웅과 반영웅(1)

약한영웅은 학원액션물에서 종종 그랬듯(또한 학원액션을 포괄하는 상위 장르로서 소년만화에서 그렇듯) 주인공과 대립하는 상대들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설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시은의 은장고와 대립하는 연합의 배지훈이나 금성제와 같은 캐릭터들은 피카레스크 캐릭터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약한영웅의 팬층에서 지지를 이끌어 낸다. 약한영웅이 선과 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의 문제, 다시 말해 작품의 가치관을 더 정확히 확인해 보기 위해 살펴볼 캐릭터는 오범석이다. 오범석은 안수호와 연시은에 대한 약간의 동경으로 그 둘과 친구가 되는데 오범석 역시 다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안수호의 특별함을 온전히 인지하지는 못한다. 오범석에게 전교 최상위 석차에 있는 연시은은 분명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반면 안수호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오범석은 본인이 인정할 수 없고 특별할 리 없는 안수호에 대해 어렴풋이 느꼇을지 모를, 동시에 자각하지 못한 동경으로부터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안수호의 비범함은 소년들의 세계와 어른들 세계의 경계와 간극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안수호에 대한 오범석의 몰이해는 곧 경계 너머 세계에 대한 무지이다. 학교성적에 대한 오범석의 도발에 안수호가 전교 1등의 석차로 응답하자 무지는 왜곡되고 증폭되어 분노와 증오로 변모한다. 안수호에게 있어 학업성적은 사람됨에 대한 근원적 평가 기준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석차로 인해서야 열등감이 폭발하는 오범석의 모습은 두 인물의 그릇 차이를 부각하며, 작품이 어떠한 인물상을 영웅으로 보고 어떤 인물을 반영웅으로 보는지를 설명한다. 작품이 지목한 반영웅인 오범석은 이후 양성훈 무리를 이용해 안수호에게 일방적인 린치를 가하는데 이는 명백히 학폭의 양상을 띤다. 그리고 급기야 이 린치로 인해 안수호는 코마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안수호에 가해진 폭력은 두 힘의 충돌이 아닌 일방적인 가해자와 희생자의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장르 스펙터클에 복무하기 위한 액션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글 서두에 언급한 장르적 연출을 끌고 가는 근본 도구로서의 액션이 아니다. 세계의 바운더리를 넘나드는 비범인 안수호가 범인(凡人)들의 폭력에 무기력하고 무참하게 희생당한 이유는 어른들의 방관, 방조 또는 비호에 있다. 말하자면 이 린치의 주체는 오범석과 양성훈 무리지만 그들 행동 막후에는 어른들과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다. 거듭 밝힌대로 학원액션물에서 공권력 부재는 장르의 전제이지만 적어도 ‘안수호’에피소드에서는 이 공권력 부재가 장르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용인된 것이 아니라 작품이 의도적으로 내러티브에 내재했다고 봐야한다. 양성훈의 부친은 시의원으로 학교 이사회 및 교장 등 학교의 지배세력인 어른들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 양성훈을 비롯한 학폭 가해자들은 바로 이 어른 세계의 비호를 받으면서 소년세계의 권력 위계에서 한 계층 더 높이 편입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소년들의 세계에 어른들의 부도덕한 설계가 개입된 것이고 이는 평범한 아이들은 넘어설 수 없는 공고함이 있다. 그러니까 작품이 규정하는 반영웅 또는 악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뉠 수 있는데 세계에 대한 무지, 목표의 부재,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표상되는 오범석과 같은 인물이 그 첫 번째 타입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연시은의 벽산중 시절 동창 송백규, 진가율의 중학교 동창 최정무 등의 캐릭터로 변주되어 반복 등장한다. 두번째는 세계의 부도덕한 (어른)설계자들로 양성훈의 아버지인 시의원 양선창, 벽산중학교의 교장 배달호이며 이후 선병춘(강학고 교사이자 선종원의 작은아버지), 이춘길(나백진의 사업파트너)을 비롯하여 거의 동일한 인물형의 어른들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이렇게 악으로 규정한 어른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설계자 포지션에서 정보 비대칭에 근간한 불공정과 부패한 카르텔로 소년들의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설정은 어른세계의 경계와 더불어 작품의 가치관과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주요한 장치이며 작품 전체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최종빌런 ‘나백진’ 을 규정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이 캐릭터는 뒤에 살펴보겠다.


알에서 깨어나 선을 넘은 새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오범석과 양성훈 무리에게 연시은은 복수법(talion)으로 대응한다. 복수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차원적인 복수행위라는 측면이 있지만, 양성훈 무리가 어른 세계의 비호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는 연시은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다.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힘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방식의 응징은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폭력뿐이다. 앞서 연출적인 측면에서 연시은이 구현하는 액션의 차별점을 언급했는데, 육체적인 능력이 열등한 연시은이 그보다 월등한 피지컬을 가진 적들을 제압하는 것에 대한 개연성은 ‘관찰’을 통한 상황에 대한 ‘인지’와 ‘이해’로 설명된다. 요컨대, 세계를 인지하고 통찰하는 힘이 액션시퀀스에서까지 확장되어 반영되는 것이다. 약한영웅이 주인공에게 그나마 물리적으로 부여한 능력인 공격에 대한 ‘예측’과 ‘회피’ 역시 관찰, 인지, 이해의 결과라는 점에서 경계를 인식할 수 있는 연시은의 통찰력이 싸움의 순간에도 반영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든 폭력으로 수행하는 복수는 연시은에게 ‘선을 넘는’ 행위이다. 여기서 선을 넘는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가 있다. 먼저 세간에 흔히 쓰이는 대로 정상범주를 넘어서거나 상호간에 최소한으로 용인할 수 있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약속을 넘어서는 과잉된 행위를 뜻한다. 주변 인물들이 이 모범생 소년으로부터 예측하는 행동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될 수준으로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기존에 그가 머물던 세계, 의미의 굶주림으로 가득차 있는 세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세계, 부도덕한 설계자들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세계에서 퇴출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안수호 에피소드의 모티프가 <데미안>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안수호와 연시은의 관계는 일정 부분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관계와 유사한 면이 있고 ‘선을 넘겠다’는 선언은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의 다른 표현으로도 들린다. 모티프로부터 변주된 것은 안수호의 비극이 어떤 운명론적인 힘에 의해 의한 것이 아닌 학폭과 어른들의 부폐와 부조리에 있다는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감지되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다만, 오범석이라는 캐릭터의 활용과 관련해서는 그의 열패감과 열등감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거나 변론의 기회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기의 소년들의 복잡한 관계와 우정의 역학에 대해서 다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기회가 없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본 작품을 원작으로 각색한 드라마 <약한영웅-Class1>에서는 오범석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안수호 에피소드는 260회여(이 글을 작성하는 9월 기준)의 연재 분량 중 12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작가가 연재와 휴재를 기점으로 정리한 시즌1, 시즌2, 시즌3(2)와는 무관하게 본 글에서는 12회에 걸친 안수호 에피소드를 1부, 나머지 에피소드를 2부로 보는 것을 제안한다. (자연스럽게 첫 회부터 안수호 에피소드 전까지는 프롤로그가 된다) 안수호 에피소드인 1부는 약한영웅이라는 작품 전체의 세계관, 작가의 인물론, 주제가 압축되어 있고 따로 때어 놓고 보아도 단편으로서 그 자체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2부는 이러한 1부의 반복과 변주로도 볼 수 있다.


벨트스크롤에서 내려온 내러티브(3)

앞서 안수호 에피소드를 1부로 볼 것을 제안했는데, 그 외 나머지 분량인 2부의 소제목은 단연 ‘나백진’이 되어야 할 것이다. 1부 이후 전체 이야기를 나백진 에피소드라 부를 수 있는 이유를 거칠게 설명하면 연재 초반부터 최종빌런인 나백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 서패스는 매체와의 인터뷰(4)를 통해 나백진과의 대결이 마무리되면 작품연재를 마무리할 것이라 언급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나백진이라는 캐릭터가 스토리를 관통하는 것이다. 등장감을 위해 다른 인물들로부터의 전언으로 언급되거나, 최초 등장에서 신체 일부와 목소리로 처리되는 연출은 다소 클리셰적인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나백진은 작품 초반부터 임팩트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학원액션물에서(그리고 더 큰 범주의 소년물에서) 최종빌런의 등장 타이밍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데 보통 이 장르의 일직선적인 내러티브 전개방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예컨대 ‘첫 번째 캐릭터를 쓰러트린다’ 이어서 ‘두 번째 캐릭터를 쓰러트린다’ 그리고 ‘두 번째 캐릭터와 동료가 되어 가장 강한 세 번째 캐릭터를 쓰러트린다’ 식으로 마지막 블록을 향해 쉴 새 없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도미노 같은 직선형 플롯을 생각한다면 나백진의 등장은 적어도 몇몇의 강적들을 쓰러트리고 난 뒤로 미뤄졌어야 했을 것이다. 약한영웅은 이 장르 문법에서 과감히 탈피한다. 나백진이라는 캐릭터가 중심에서 발산하는 자장은 작품 전체와 인물들에 닿아서 주요 캐릭터들은 중심에 위치한 나백진을 향해 나선을 그리며 수렴한다. 직선형으로 전개되는 학원 액션물에서였다면 마치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의 스테이지 보스 역할을 하고 퇴장했을 배지훈, 이세한, 금성제, 지학호와 같은 캐릭터들은 이 나선 안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며 각 캐릭터의 서사를 강화 시켜나간다. 이와 같은 전개 방식은 그 자체로 장르의 전형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에 기여한다.


경계 사이에 마주한 분신(分身)

 1부가 마무리되고 나백진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재분의 댓글과 작품 커뮤니티 등에서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안수호와 나백진 동일 인물설. 다만 흥미로운 가설에 비해 근거는 대체로 빈약했다. 사실 나백진이 학폭 피해로 인해 각성한 안수호라는 주장에 대해선 그 개연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약한영웅이 명백하게 작화와 비주얼 스타일로서 캐릭터간의 외형 차이가 드러나는 만화 컨텐츠임을 감안하면 넌센스에 가깝다. 어쩌면 이러한 가설 자체가 작가에게는 (특히 그림 작가에겐) 다소간의 당혹감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농담 같은 가설은 캐릭터 분신론 차원에서 유의미하다. 나백진은 분명 안수호의 분신이며 안티테제이다. 1부의 안수호는 소년세계에 머물면서도 어른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범함으로 소년 세계에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2부의 나백진은 같은 비범함으로 어른 세계의 설계자 카르텔의 주체가 되어 소년세계를 장악한다. 두 소년은 경계를 인식하고 그 너머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다르게 사용할 따름이다. 또한 두 캐릭터는 각각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의 희생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백진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가정폭력과 보호자인 어른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부도덕한 교사와 학부모들에 의한 지속적인 차별과 멸시를 당한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 고등학생 안수호에게 닥친 비극 역시 같은 종류의 힘이 작용한 결과이다. 분신관계인 두 캐릭터 간 분기는 어른세계가 개입된 폭력 이후의 변화로 볼 수 있는데 나백진은 세계의 부조리한 설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그 설계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약한영웅이 나백진에게 최종빌런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한 방식은 1부에서 확인한 어른 세계의 이해와 설계력에 있다. 나백진은 표면적으로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주변인물들을 복속시키지만, 소년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범인들을 아득히 뛰어넘은 통찰력은 그 폭력보다 강력하다. 이미지 메이킹과 조직관리를 통해 연합이라는 조직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기술, 경쟁조직을 제압하기 위해 상대의 공포와 니즈를 자극하는 행위는 작품 속 어느 소년 캐릭터에게서도 볼 수 없는 비범함이다. 말하자면 나백진은 학원액션물의 클라이막스인 ‘가장 강력한’ 최종 빌런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루기 위한 시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백진이라는 캐릭터는 왜 안수호의 분신이어야 했을까? 이 물음은 약한영웅의 주제를 위한 질문이다.


최종빌런을 위한 변론

 연재 후반 ‘들개’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나백진의 유년시절 서사는 캐릭터 온정주의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연재 타이밍이 연시은과의 최후의 대결과 예기치 못한 사건 이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타도 대상으로 설정된 최종빌런의 전사를 전체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부각하는 것을 난데없는 캐릭터 미화로 여길 독자도 많을 것이다. 특히 학원액션물에 익숙하며 장르가 제공하는 플롯의 전형성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할수록 더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변론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 나백진과 안수호는 분신관계인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부의 안수호와 연시은, 2부의 나백진과 연시은은 사실상 동일한 인물이고 이는 경계 밖의 두 소년을 반복해서 만나는 소년의 이야기로 약한영웅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게 한다. 1부에서 소년세계에 머물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안수호가 연시은에게 동경과 우정의 대상이었다면 2부에서 어른세계에 머물면서 소년세계를 넘나드는 나백진은 연시은의 적이 되는데 그 이유는 나백진이 연시은이 소년세계에서 사귄 친구들(바쿠팸, 특히 서준태)에게 위해를 가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경계 안에서 갈증과 고립을 느끼던 연시은은 안수호를 통해 그리고 오범석과의 사건으로 인해 세계의 경계를 넘어선 후에야 소년 세계 안에서 우정과 연대를 형성 할 수 있게 된다. 새롭게 대립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안수호와 같은 경계를 넘는 비범인 이라는 것은 1부에 대한 역설적 변주이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특별한 비범인으로부터의 구원 없이도 우정을 쌓아가고 소년들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는 소년의 내적 성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백진의 전사는 그가 1부에서의 연시은과 마찬가지로 세계안에 고립되고 갈증을 느끼는 존재임을 밝히기 위한 설정이다. 즉, 2부의 나백진은 1부에서 안수호로부터 구원받기 전 연시은과 역치(易置)된 존재인 것이다. 최후의 대결에서의 나백진의 감정과 그 대결 이후 연시은에 대한 태도, 앞서 연시은과 나백진이 수학문제를 주고 받는 과정을 굳이 보여준 것은 결국 세계 안에서 고립된 자신을 구원할 구원자를 갈급하는 나백진을 그리기 위함이다. ‘이해받고자 하는’ 또는 ‘이해하고 싶은’ 관계에 대한 갈망이다. 나백진은 연시은의 우정의 대상으로서 다시 한번 안수호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결국, 소년들의 우정

 1부가 소년들과 어른들의 힘의 경계를 지목하고 작품이 생각하는 ‘영웅’을 안수호를 통해 표상했다면 2부는 경계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소년들의 연대와 우정으로 주제를 확장해 나아간다. 안수호와의 만남, 박후민, 서준태와의 연대, 나백진과의 대립은 우정을 바톤으로 전개되는 관계의 릴레이다. (나백진과 연시은의 관계 조차 서로를 이해 하지만 끝내 엇갈린, 이뤄지지 않은 혹은 잠재적인 우정이라고 봐야 한다) 소년만화의 우정에 대해 누군가는 그 진부함과 상투성을, 누군가는 학원폭력물이라는 누명에 대한 알리바이일 뿐이라 말할 것이다. 또한 예민한 요즘 소년들의 관계를 옛 감성에 의지해 어설프게 다룬다면 소년들의 공감을 얻기는 커녕 교조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약한영웅이 다루고 있는 소년들의 꿈과 우정이 현실의 소년들의 그것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반영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답을 유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영웅이 주제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구성적으로 훌륭하고 주제와 관련해 작가가 포착한 요소들(경계인으로서의 소년과 설계자로서의 힘)은 작품 내에서 설득력이 있다. 만약 전형적인 학원 액션물의 캐릭터 느낌이 강한 박후민을 주인공으로,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한 적을 만나 결국에는 한계를 극복하며 최종 빌런인 나백진을 극복하는 영웅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면 설령 그 동기가 우정이었다고 한들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약항영웅은 영리하게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액션 스펙터클에만 천착하지 않았고 말초적인 힘의 과시나 마초이즘을 최소화했고 청춘의 일탈로 대리만족을 추구하지 않았다. 장르물로서 익숙한 쾌감의 제공이라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 박후민을 서브 캐릭터로 활용하여 장르적 기대감에 최소한으로 부응하면서도 소년과 어른의 경계 위를 걷는 소년들을 응시하는 약한영웅의 시선은 학원액션물이라는 장르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소년은 결국 어른이 된다. 시간은 소년들을 경계 밖으로 떠밀어서 어른세계에 편입시키고야 만다. 세계의 교체는 시나브로, 어쩌면 허무하게 진행되는 법이다. 소년들의 세계에서 영웅은 무엇일까? 그 한시적이고 그러나 순수한 세계의 약한영웅은 세계의 구원자가 아닌 소년들의 꿈과 우정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모든 소년들일 것이다.



(1) 이 글에서는 반영웅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안티히어로나 아치에너미로서의 의미보다는  작품의 가치관 및 주제를 표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과 대척점에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2) 시즌1은 `18년 5월 연재시작부터 `19년 6월까지 형신고 에피소드, 시즌2는 `19년 8월부터 `20년 10월까지 지학고 에피소드, 시즌3는 `21년 2월부터 9월 현재 연재 중이다

(3)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을 의미함. 좌에서 우(또는 아래에서 위)와 같이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비디오게임의 하위 장르

(4) `22년 12월11일 한겨레 인터뷰 <약한영웅? 꿈을 지키고 끝내 이뤄내는 존재 – 서패스 작가 인터뷰>



<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

* 대상: 불행의 가능성에 대한 노트 - 「집이 없어」론, "작품: 집이 없어" 

* 최우수상: 학원 액션물에 대한 또다른 시선 ONE, "작품: ONE"  

* 우수상: 작품 인물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 "작품: 닭은 이외로 위대하다"  

* 우수상: 무제(無題), "작품: 요나단의 목소리"

* 신인상: 조각난 인간을 향한 응시와 그 개인화 ― 연상호의 만화 『계시록』 읽기, "작품: 계시록" 

* 신인상: <웹툰 약한영웅 평론> 경계 너머의 소년들, "작품: 약한영웅"



필진이미지

윤상훈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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